
최근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를 정주행하고 며칠 동안 후유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를 켜면 자꾸만 그 강렬한 네온사인과 루시의 눈동자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저는 원래 이런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총질하고, 칩을 뇌에 박고, 서로 속고 속이는 그런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피곤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우연히 친구의 강력한 추천으로 1화를 시작했다가, 그날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습니다. 결말을 보고 나서는 멍하니 모니터만 쳐다보며 ‘세상에, 이렇게까지 매운맛이라고?’라며 탄식했죠. 데이비드와 루시가 겪어야 했던 그 잔인한 운명은 정말이지 가슴이 미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작가의 다른 스토리 기획안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소문에는 우리가 본 애니메이션의 결말이 그나마 순한 맛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돌더군요.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여기서 더 슬플 수가 있다고? 주인공이 죽고 다 박살이 났는데?’라며 코웃음을 쳤죠. 하지만 그 기획안의 세부 내용을 조금씩 찾아보고 나니 정말 등골이 서늘해지더군요. 우리가 목격한 비극은 어쩌면 해피엔딩에 가까웠을지도 모릅니다. 정말로 사이버펑크라는 세계관이 얼마나 냉혹한지, 작가들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질 지경입니다.
사실 저에게는 이 작품과 관련된 꽤 웃픈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감정이 너무 고조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사이버웨어라는 개념에 심취해버린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회사에서 너무 큰 실수를 저지르고 집에 돌아왔는데, 뇌가 과부하 걸린 기분이 들더군요. 그래서 침대에 누워 ‘아, 나한테도 산데비스탄이 있었으면 지금 당장 이 프로젝트를 끝내고 퇴근했을 텐데’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유튜브 자동 재생으로 ‘I Really Want to Stay at Your House’가 흘러나오는 겁니다. 감수성이 폭발한 나머지 저는 거실에서 혼자 사이버펑크 댄스를 춘답시고 몸을 흔들다가 발가락을 테이블 모서리에 제대로 찧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고통은 산데비스탄이 아니라 전기 충격을 받은 것 같더군요. 1분 동안 비명도 못 지르고 발을 부여잡고 굴러다니는데, 옆에서 우리 집 고양이가 정말 한심하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다음 날 출근해서 동료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 동료는 저보다 한술 더 뜨더군요.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를 따라 하겠다며 검은색 아이라인을 진하게 그리고 나갔다가, 지하철에서 웬 고등학생들이 코스프레 행사 가는 거냐고 물어봤다며 울먹였습니다. 우리는 사무실 한구석에서 사이버펑크 엣지러너가 사람을 이렇게 망쳐놓는다고 한탄하며 웃었죠. 밖에서 보면 정말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이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나이트 시티의 시민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이런 서브컬처에 빠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덕분에 일상이 조금은 더 다채로워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운이 좋았던 이유
작가가 고려했던 다른 시나리오들은 그야말로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가 본 엔딩이 그나마 인물들의 유대와 희망을 조금이라도 다루고 있다면, 폐기된 아이디어들은 캐릭터들을 더욱 잔혹한 파멸로 몰아넣는 내용들로 가득했습니다. 아래는 제가 느낀 비극의 온도 차이를 정리해 본 내용입니다.
- 희생의 의미: 현재 엔딩은 주인공의 의지가 반영된 희생이지만, 기획안 중 일부는 무의미한 소모품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관계의 끝: 루시와 데이비드의 마지막 순간은 애틋함이 남았지만, 다른 기획안들은 서로를 기억조차 못 하게 되는 비극적 결말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 주변 인물들의 운명: 살아남은 동료들의 희망 섞인 미래조차 철저히 짓밟히는 설정이 존재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지금 이 결말에 아주 큰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본 작품은 충분히 슬펐지만, 동시에 주인공들의 삶과 꿈을 기려주는 따뜻함이 있었습니다. 작가들이 그 수많은 잔혹한 선택지 중에서 지금의 이야기를 골라주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낍니다. 오늘도 저는 사이버펑크의 음악을 들으며 퇴근길에 오릅니다. 물론 이번에는 발가락을 조심하면서 말이죠. 나이트 시티는 여전히 위험하고 차가운 도시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들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기억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